'베컴'에 해당되는 글 4건

  1. 박지성에게 베컴을 기대할 수 있을까 (8) 2011.02.02
  2. 사진으로 정리하는 베컴의 축구 인생 (6) 2010.08.13
  3. 베컴의 런던 토박이 영어와 미국 영어, 그 미묘한 차이 2010.01.18
  4. 베컴의 클럽축구 5단계 정리 2009.12.29

박지성에게 베컴을 기대할 수 있을까박지성에게 베컴을 기대할 수 있을까

Posted at 2011.02.02 18:43 | Posted in 영국★프리미어리그
'박지성이 맨유에 갔을 때부터 축구를 본 사람'이란 우스개 소리로 풍자할 만큼 박지성은 우리 나라 최고의 축구 선수다. 오래전의 축구 선수, 지금은 감독이거나 축구 해설하는 사람들, 허정무, 차범근 등도 대단했다고 하지만, 지금 세대는 그야말로 박지성 세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박지성이 나오는 맨유 경기를 새벽을 지새며 응원도 하고, 만약 선발로 뛰지 않거나 후반 잠깐 뛸 경우 퍼거슨 감독을 욕하며 다소 격한 사랑도 보여주었던 박지성 세대. 이제 박지성 세대를 잠시 뒤로 해야 할 시간, 새로운 세대를 기다려야 할 시간이다

지난 1월 31일, 박지성이 공식 은퇴를 했다. 더 이상 A매치 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비축한 힘을 맨유를 위해 뛰겠다고 한다. 약 3~4년 동안 말이다. 2000년부터 국가대표로 뛰며 11년 동안 헌신한 박지성은 이렇게 말하며, 카메라 플래시 세레를 맞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물론, TV 중계 혹은 만체스터에 건너간 사람들은 박지성이 뛰는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축구 국가대표로 뛴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자랑이자 감동의 일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맨유가 아닌 국가대표 빨간 응원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박지성은 아직 더 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럽 경기를 뛸 수 있다면, 국가 대표로 뛸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그렇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어던졌다. 박지성의 이런 결정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어이없어 아쉬워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응이 어떻든 박지성은 이미 떠나겠다고 밝혔고, 그 결정은  다시 번복될 수 없을 것이고, 또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번복할 수 없을까?
나는 번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지성이 지금껏 보여준 성격상 자의에 의해서는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타의에 의해서는 번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자의에 의해 번복하면, 자칫 가벼운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기에 박지성으로서 꺼리겠지만, 타의에 의해서 남의 간절한 부탁이라면 명분이 생기게 된다.

필요에 의해 우리 나라 국가대표로 다시 뛴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조광래 감독이든 미래의 다른 국가 대표 감독이든 다시 박지성이 꼭 필요하다고, 팀을 이끌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하면 박지성이라도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지금껏 국가 대표팀 선수로 뛰었고, 또 은퇴후 국가 대표를 위해 (코치든 감독이든, 난 박지성이 해설위원이 될 거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몸 담아야 하기 위해서라도 박지성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자신의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처음 1년 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박지성에게 지금이라도 바라는 것은 잉글랜드 축구 국가 대표, 잉글랜드 축구 아이콘 데이비드 베컴의 마인드다. 베컴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생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월드컵을 무릎 부상으로 목전에 어쩔 수 없이 뛰지 못했다. 그 때 그의 나이 35세, 카펠로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으로 베컴을 데려가고자 했지만, 부상이란 악재로 뛰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기술위원격으로 따라갔다.

부상 회복을 위해 재활훈련에 전념해도 모자를 시기에, 그는 자신의 국가대표의 벤치에 앉아 정신적이나마 선수들을 돕기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베컴의 국가대표를 위하는 이런 헌신은 높이 살 만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베컴은 지금 다음 월드컵에도 뛰고 싶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우승 후보로 뽑히는 잉글랜드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신의 국가를 꼭 우승과 함께 은퇴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난 차라리 박지성이 번복할 것이라면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은퇴를 번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베컴이 가진 마인드처럼 국가대표를 위해 어떻게든지(신체적 능력이 저하되었다면 벤치에서 후배들을 위한 정신력 고양 및 조언 등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박지성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좋은 후배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잉글랜드 국가 대표에도 베컴보다 훨씬 좋은 후배들도 많다. 베컴이 만약 잉글랜드 후배들을 위해 은퇴를 해야했으면 진작에 해야했다. 즉, 후배들에 양보를 하는 것이 마냥 국가대표를 위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맨유를 위해 마지막 축구 인생 불살라 뛰어 보겠다는 것도 좋다. 하지만, 클럽에서 뛸 수 있다면 국가대표에서 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컵 전에 맨유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또 선발로 뛴 경기가 많았을지라도 사실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한 이후 벤치에 앉거나 아예 출장안한 맨유 경기가 훨씬 많다. 지금 아시안컵 끝나고 맨유로 돌아가도 자신의 몸을 불살라 뛰고 싶어도 뛰지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축구팬들이 알겠지만, 퍼거슨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클럽에서 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은퇴는 박지성에게 국가대표 경기에도 못 뛰고, 맨유에서도 못 뛰는 무리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국가대표로 뛰는 박지성의 모습을 보기 위한 안간힘 혹은 열렬한 소망으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나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아직 박지성 팬들이 많고, 박지성이 맨유 유니폼이 아니라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 팬도 많다. 난 박지성에게 베컴을 기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베컴이 누구? 사진으로 정리하는 베컴의 축구 인생>

eppinggreen@londonpointer.com

사진으로 정리하는 베컴의 축구 인생사진으로 정리하는 베컴의 축구 인생

Posted at 2010.08.13 09:15 | Posted in 영국★프리미어리그

며칠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헝가리와의 평가전이 끝난 후 카펠로 대표팀 감독은 데이비드 베컴을 더 이상 대표팀으로 뽑지 않겠다는 충격 인터뷰를 했습니다. 베컴 자신은 물론 팬들도 이런 갑작스런 발표에 당혹해하고 있죠.

나이(35세)가 좀 있지만,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남아공 월드컵도 뛰지 못했고, 지금은 부상에서 완쾌되어 열심히 훈련하고 있기에 이 발표는 새 시즌을 앞두고 찬물을 제대로 끼얹은 격이 되었습니다.

카펠로 감독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이는 프랑스 전에서 모든 영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은퇴경
기를 치뤄 준다고 하네요. 하지만, 베컴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다음 월드컵은 힘들겠지만, 2012년 유로 대회 출전입니다. 베컴 스스로도 이번 유로 대회를 축구 인생 마지막 경기로 일찌감치 생각해 두었죠. 베컴 에이전트도 "베컴은 국가 대표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다"라는 말로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선수 구성은 감독 마음입니다. 감독이 싫다면 싫은 것이죠.

가뜩이나 남아공 월드컵에서 죽쓰고 온 감독이기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유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괜히 베컴을 기용했다가 좋은 성적 못 내면, 카펠로 감독 핑계거리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잉글랜드 FA도 카펠로 감독을 지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안타까운 베컴의 대표팀 탈락. A매치 출장 115회를 기록하는 동안 베컴의 축구 인생을 사진으로 정리
해봤습니다. 사진의 출처는 인디펜던트지입니다.

1975년 5월 2일생, 1991년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연습생으로 들어왔다. 자기의 고향 런던이 아닌 맨체스터에서 베컴의 축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듬해 1992년 브라이튼과의 리그컵에서 데뷔를 하게 된다.

1993년 맨유와 정식적으로 계약을 체결, 1995년 프레스톤으로 임대를 갔다. 프레스톤에서 5경기 2골 기록.

베컴의 황금기 시작. 임대 생활에서 급성장한 베컴은 1996년 맨유가 프리미어리그와 FA컵을 우승하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게다가, 윔블던 전에서 보여준 하프 라인에서 넣은 골이 프리미어리그의 올해의 골로 선정되면서 큰 유명세를 얻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잉글랜드 대표팀 승선. 1996년 맨유에서 알찬 시즌을 보내는 중 베컴은 몰도바와 월드컵 예선 경
기에서 데뷔했다. 잉글랜드가 3대0 승.

베컴의 축구 인생 중 가장 암울하게 만든 사건. 199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 경기에서 베컴은 복수심에 불
타 상대 선수를 걷어 찼고, 그대로 퇴장당하게 된다. 그 경기에서 아쉽게 승부차기에서 지게 되는데, 잉글랜드 팬들은 그 패인을 베컴의 쓸데없는 퇴장으로 보고, 베컴은 한동안 엄청난 비난 속에 살아야 했다.

월드컵에서의 실수는 잊고, 다음해에 보란 듯이 맨유에서 트레블을 이룬 베컴.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리그, FA컵을 우승했다. 베컴의 최대 전성기.

하지만, 또 다른 실수를 하는 베컴. 유로 2000 포르투갈에게 진 경기에서 잉글랜드 팬, 특히 예전 아르헨티나전에서
저지른 베컴의 실수를 기억하는 팬들이 야유를 보내자 손가락 욕을 펼쳐 보였다.

다시 잉글랜드 팬들의 마음을 돌린 베컴. 유로2000 이후 베컴은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 선정되는데, 주장이 된 이
후 첫 메이저 대회인 2002년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잉글랜드를 탈락으로부터 가까스로 구했다. 그리스와의 마지막 예선 경기에서 최소한 비겨야 월드컵에 진출하는데, 잉글랜드는 질질 끌려다니다 마지막 베컴의 프리킥 골로 동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골로 베컴의 아르헨티나 실수는 모두 용서가 된다.

2002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또 숙적 아르헨티나를 만났다. 베컴에겐 복수할 절호의 기회. 잉글랜드가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이겼는데, 베컴이 페널티킥으로 골을 넣었다. 베컴에게 2002년 월드컵은 잉글랜드 팬들의 마음도 돌리고, 아르헨티나에 복수를 하게 한 아주 뜻깊은 대회. 그렇지만, 8강전에서 브라질에 패하게 된다.

베컴을 또 다시 괴롭힌 포르투갈. 유로2004 포르투갈과의 4강전 경기에서 승부차기로 졌다. 2004년은 잉글랜드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기회라는 기대가 아주 컸기에 팬들의 아쉬움도 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또 포르투갈에 진 잉글랜드. 베컴도 이 때 책임을 물어

잉글랜드 주장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2002년 월드컵 끝나고부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베컴. 2006년에 첫 우승을 했다. 하지만, 우승 후 그는 쓸쓸히 스페인을
떠났다.

미국 LA갤럭스로의 이적. 미국에서의 화려한 생활 시작.

유로2008 예선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대2 충격패. 그것도 홈에서 패했고, 결과적으로 잉글랜드는 유로2008 출전이 좌절되었다.

베컴은 2010년 유로2008을 잊고, 월드컵 예선전에 나서게 된다. 베컴 출전에 찬반논란이 많았지만, 베컴은 벨라루스와의 경기를 치르면서 A매치 107경기를 기록, 바비 찰튼 경의 기록도 넘게 된다. 베컴은 잉글랜드 역대 3번째 많은 A매치 출장 기록.

밀란에서 베컴은 안타까운 아킬레스 부상을 당하고, 선수로서가 아닌 2010년 월드컵에 기술위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정신력 부족으로 독일에 대패하게 되고, 베컴은 남아공에 가서 화만 내고 돌아왔다는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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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의 런던 토박이 영어와 미국 영어, 그 미묘한 차이베컴의 런던 토박이 영어와 미국 영어, 그 미묘한 차이

Posted at 2010.01.18 09:33 | Posted in 영국★영어
런던에는 많은 영어로 의사 소통이 이뤄집니다. 그 중 코크니(Cockney)는 런던 동부 지역에서 많이 듣게 되는 영어 사투리죠. 보통, 런던 전역에서 많이 쓰이고, 또 런던 유학생들이 보통 접하는 에스츄어리 영어(Estuary English, 영국 동남쪽 영어, 듣기에 가장 무난한 영국 영어)보다 그 억양과 발음이 현저히 다릅니다. 즉, 이 EE는 어떻게 보면, RP와 코크니의 중간 단계에 있는 영국 영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코크니를 접한 것은 런던에서 하숙을 할 때였습니다. 집주인이 마룻 바닥을 고치기 위해 인부를 불렀는데,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의 말투가 코크니였더군요. 코크니 말투는 뭔지 모르게 좀 시끄러운 경향이 있습니다. 뭔 일인가 방에서 나와 보니, 집주인 아줌마와 백인 인부가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암튼, 코크니의 말투는 어떻게 보면,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영어처럼 들릴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영국에 처음 온 유학생이면요. 위에서 말한 에스츄어리 영어만 듣다가 조금 억양이 다르고, 발음이 이상하면, 이거 코크니 발음인가 보면, 웨일즈나 스코틀랜드 영어인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지금은 코크니 발음이 아주 익숙합니다. 그 때 집 고치는 인부와 얘기를 종종 나눈 덕도 있겠지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좋아한 저로서는 항상 코크니 발음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바로, 영국인이 낳은 최고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영국에서 항상 TV를 틀면, 베컴은 단골 손님으로 나왔습니다. 잉글랜드 국가 대표 주장이었을 때에도 경기 전 항상 대표팀에 대해 이것저것 말하고, 이적할 때마다 이적 소감 말하는 등 항상 그의 말투를 들을 수가 있었죠. 저는 유학생답게 그의 말투를 들으며, 영어 공부도 하면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베컴도 코크니 영어를 구사합니다. 집 마룻바닥을 고치는 인부보다는 좀 조용한 편이지만, 잘 들어보면 코크니임에 분명하죠. 요새는 미국 물도 좀 먹었고, 좀 연륜이 쌓이다 보니 일부러 영어를 고급스럽게 사용하며 코크니 영어를 안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컴은 런던 동쪽 레이톤스톤(Leytonstone)이란 코크니 지방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코크니 영어는 런던의 노동자 계층이 쓰는 말입니다. 아쉽게도 영국 영어는 계층이 나뉘어져 있죠. 그래서, 요즘은 코크니 영어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화이트 칼라로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에는 에스츄어리 영어 등으로 새로 영어를 배웁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서울 말이 고지식 해보인다고 해서 사투리를 안 쓰고 서울 말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코크니 영어를 자랑스러워 하며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죠. 



베컴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나가서 인터뷰하는 내용입니다. 미국으로 축구를 하러 온 이유, 잉글랜드에서 한 때 역적으로 몰렸던 일 등을 얘기하는 군요. 당연히, 미국인인 엘렌과 베컴의 억양과 발음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6분 45초 쯤에 보면, 'better'라는 같은 단어를 말하는데, 베컴은 '베터', 엘렌은 '베러'라고 발음하죠. 사실, 베컴의 영어가 진정한 코크니 영어라고 한다면, 'better'가 '베으어'에 가깝게 들려야 할 것인데, 일부러 그렇게 발음하지 않으려고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영국에서 '축구'라는 단어 자체도 다르기 때문에, 대화 도중 풋볼과 사커라는 의미 충돌도 자주 보입니다. 베컴이 스스로 여기가 미국임을 인식할 때면, 사커라고 말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대화 나중 부분에는 은연 중 그냥 풋볼이라고 말할 때도 있네요. 첫 부분에서 베컴은 사커 슈즈(Soccer shoes)라고 하면서 엘렌한테 선물을 건네는데, 여기가 영국이었더라면, 풋볼 부츠(Football boots)라고 했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도 베컴이 미국에서 미국 청중을 최대한 고려하려고 연습했었을 것 같은 예감이네요.

코크니 영어에 대해 좀 더 살펴 보면, 위에서 'better'를 예를 든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영국 영어, 즉 에스츄어리 영어와는 좀 다릅니다. 영국 영어는 미국 영어와는 달리 't'발음을 강하게 내는 데 반해 코크니는 거의 발음을 하지 않죠. 'water' 'centre' 등도 각각 '워어' '센어'와 비슷하게 발음하죠. 주의할 점은 '워~어'가 아닌 끊어서 '워/어'로 발음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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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의 클럽축구 5단계 정리베컴의 클럽축구 5단계 정리

Posted at 2009.12.29 09:30 | Posted in 영국★프리미어리그
외모만큼이나 축구 실력도 뛰어난 베컴. 지단이 은퇴했을 때처럼, 베컴도 점점 은퇴할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울 나름입니다. 수많은 인파를 몰고 다니고, 축구 실력 뿐만 아니라 패션까지 선도했던 그였기에 이렇게 사진으로 베컴의 클럽 경력을 정리하는 것이 좀 특별할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1. 맨유 전반 (1993 ~1999)
베컴은 퍼거슨의 아이들 중 한 명으로 맨유에서 키웠다고 볼 수 있는 선수입니다. 21세 때, 윔블던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중앙선 부근에서 골을 터트려 하루 아침에 잉글랜드 전국구 스타가 되었죠. 2년 뒤에는 프리미어리그, FA컵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동시에 일궈내는 1999년 트레블 달성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풋풋한 베컴씨~

2. 맨유 후반 (2000 ~2003)
트레블을 이룬 후 베컴은 당대 영국 최고의 아이돌, 베컴보다 1살 연상의 여인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 때쯤부터 축구 선수로 봐주는 사람들보타 연예인이라는 시선이 따라다니게 되죠. 2002년, 왼발 부상으로 주전 경쟁에서 잠시 뒤쳐지기도 했지만, 이 때쯤 맨유와 재계약을 함으로써 곧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주전 복귀 얼마되지 않아 FA컵 4강전에서 맞붙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진 후 퍼거슨 감독의 구두에 맞아(?) 맨유와 결별을 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난 상처가 나도 멋있다구~

3. 레알 마드리드 (2003 ~ 2007)
오랜 잉글랜드 생활을 접고 새로운 스페인 생활을 하는 베컴. 레알팬들의 열정적인 환영을 받고 왔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즌에 레알 시즌 성적은 4위. 지단, 호나우두, 라울 등 갈락티코라는 불리우는 당대 최고 선수들과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컴은 스페인 라리가 리그 우승컵을 안기 위해 3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레알에서 베컴의 성적은 총 153경기 출장에 19골. 맨유 시절 399경기 출장에 87골과 비교하면 좀 폼이 떨이지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이 인기는 여전하구만~

4. LA 갤럭시 (2007~2009)
잉글랜드, 스페인 축구를 전파하러 내가 미국에 왔노라~라고 외치며, 베컴은 미국 땅을 밟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 2시즌 동안 25경기 출장(5골)에 그치게 되죠. LA다 보니, 할리우드와 가까워 미국 연예인들과 친해져 축구에 소홀히 했습니다. 여기엔 부인 빅토리아도 큰 몫을 했죠. 잔부상이 많았다곤 하지만, 축구로 이름을 알리려는 노력보다는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더 부각시키더군요. 역시, 축구 이후의 삶을 내다보는 베컴의 센스(?)가 돋보이는 미국생활입니다.

                      아직 내 킥 실력은 줄지 않았다구~

5. 밀란 (임대)
베컴은 이탈리아 축구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갤럭시에서의 생활이 싫증났는지 아니면, 축구 선수로서 더 각성을 했는지 이탈리아에 돌아와 다시 미국보다 한층 더 높은 축구를 추구하게 되죠. 사실, 베컴이 이탈리아에 돌아온 이유는 월드컵때문입니다. 잉글랜드 대표로 뛰기 위해선 항상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최고의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했죠. 아직 베컴은 월드컵 우승 경력이 없기에 밀란 임대는 베컴의 축구 경력의 마지막 찬스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시 갤럭시로 돌아갔지만, 내년 2010년 1월달에 또 밀란으로 임대가 결정되었다고 하네요.

          2010년은 제발 월드컵 우승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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