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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입식 교육과 노벨상과의 상관관계 2014.12.06
  2. 우리나라, 수학은 잘하지만 노벨상은 못타는 이유 (1) 2013.10.29
  3. 우리 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1) 2013.09.12
  4. 우리 나라가 아직도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19) 2011.08.19
  5. 영국 대학교의 수업 방식, 노벨상이 나올 만 하다. (5) 2009.03.17

주입식 교육과 노벨상과의 상관관계주입식 교육과 노벨상과의 상관관계

Posted at 2014.12.06 06:00 | Posted in 일상 생각 & 의견 & 아이디어/교육

우리 나라 교육은 한마디로 창의력이 없다. 창의력을 키우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주입식에다 암기식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구구단을 외우는 것으로 결국 배움을 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생각을 하는 교육이 아니라 생각을 죽이는 교육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부모가 시켜서 학교가 시켜서 말이다.


습관은 아주 무섭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외우는 습관을 들이면, 커서도 모든지 외우려고만 한다. 또한, 뇌도 습관적으로 암기식으로 공부하면, 뇌는 그것에 맞게 최적화되고 익숙해진다. 즉, 뇌가 외우는 방식으로 발달될 뿐 이해하는 쪽으로 발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뇌가 암기식으로 발달될 경우, 이해한 후에 발휘되는 창의력으로 나아갈 기회를 애초에 잃게 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해가 되지 않아 창의력이 생길 수 없고, 창의력이 없는 교육은 그야말로 죽은 교육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벨상은 기본적으로 창의력이란 이름으로 인간이 배운 지식을 사용하여 이전에 없던 큰 업적을 낸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나라 문화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바로, 우리 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특히 큰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머리 속으로 구구단과 알파벳 외우는 것을 시키면 빨리 습득하는 것 같아 부모들과 선생들은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외우는 것에 익숙해져 학생들은 기타 다른 것도 빨리 외우려는 습관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습관은 나중에 커서 향후 이론과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을 암기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당연히, 큰 학업적으로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영국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 등 동양계 학생들이 수학을 가장 잘한다. 하지만, 이들은 수학이란 이론을 잘 안다기 보다 우리 나라의 수학 문제 푸는 기술을 암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수학 문제 푸는 속도는 또래 영국학생들보다 빠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수학문제를 빨리 풀면서 자신이 수학 천재인 것처럼 콧대가 높아질 수 있지만, 현실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노벨상도 하나 못 받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우리 나라 방식대로 공부한다면, 우리 나라 학생들이 영국에서 또는 기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할지라도 노벨상은 꿈도 못 꾸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같은 사람을 보면 어렸을 때 얼마나 엉뚱했는지 다 알려져 있다. 따라서, 어릴 때는 어느 정도 뒤쳐지고 엉뚱해져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책과 친해지거나 새로운 현상과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지식 습득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즐길 수 있어야 지식 그 자체를 좋아하게 되고, 결국 창의력이 생긴다. 여기서 자발적인 교육이 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교육의 자발성은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스스로 좋아서 찾아서 하는 배움을 말한다. 창의력은 어느 주입식 교육보다 우월하며, 이런 창의적 사고를 고조시키는 보편화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자발성이 가미된 진정한 교육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 이와 같은 나의 발언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와 같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수능이란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학원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 호황을 누리고, 사교육도 암암리에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러한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 속에 우리 나라 학생들의 창의력은 다 죽는다. 그리고, 노벨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우리나라, 수학은 잘하지만 노벨상은 못타는 이유우리나라, 수학은 잘하지만 노벨상은 못타는 이유

Posted at 2013.10.29 07:36 | Posted in 일상 생각 & 의견 & 아이디어/시각 & 의견 & 생각

영국에서 유학한 경험을 보면, 확실히 우리 나라 학생들이 수학을 잘한다. 특히, 영어권 학생들과 비교하면 아주 뚜렷하다. 미국에서 유학했던 내 친구도 자신이 미국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제일 잘한다고 자랑하곤 했으니, 영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우리 나라 사람 혹은 아시안인들이 수학을 잘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한다. 바로, 숫자를 읽는 발음 차이다.

 

나도 그랬고, 미국에서 유학했던 친구도 수학을 공부할 때 숫자를 영어로 읽지 않게 된다.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속으로 우리 나라 한글로 읽는 것이다. 가령, '301 + 724' 라는 쉬운 수학 문제가 있을 때, 우리 나라 학생들은 '삼백일 더하기 칠백이십사' 내지는 '삼공일 더하기 칠이사'로 속으로 뇌이면서 계산을 한다. 물론, 아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암산으로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이것을 'Three hundreds one plus Seven hundred twenty four'로 읽을 수 밖에 없다. 혹은 "쓰리 오 원 플러스 세븐 투 풔라고 읽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엇이 되었든 우리 나라 언어와 비교해 어절이 길다. 그리고, 이 어절 차이는 바로 문제를 읽는 속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 숫자를 영어로 읽는 것이 훨씬 길기에 이것은 나중에 수학 문제를 푸는 속도로 직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이란 숫자만 봐도 우리 나라는 ''이란 한 음절이 되지만, 영어로는 '쓰리' 라는 두 음절로 읽게 된다. 백단위만 넘어가도 '헌드레즈' 네 음절이 꼭 딸려 오게 된다. 사실, 우리 나라 숫자는 1부터 10까지 모두 한 음절로 읽기에 아주 쉬운 반면 영어는 그렇지 않고, 백단위만 넘어가도 모두 읽어야 하는 음절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결국 이런 문제 푸는 속도는 시험 시간 내에 검산할 수 있는 짜투리 시간을 얼마나 많이 얻느냐의 차이로 이어진다. 누구나 계산에 실수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 나라 학생들은 영국인과의 이런 속도 차이로 상대적으로 검산할 시간이 많아 그 시간 내에서 실수를 바로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고등학교에서 수학 시험볼 때 남들이 시험지를 한번 볼 때 두번까지 보는 경우가 많았다.


 

수학은 잘하지만, 노벨상과는 거리가 먼 이유

 

우선, 수학과 노벨상은 그다지 큰 연관이 없을 수 있다. 수학이 물리, 화학, 경제 등에 기초가 된다고 하더라도 수학을 잘한다고 노벨상을 탄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경험적으로 봤을 때에도 노벨상을 탄 수상자 모두가 수학을 100% 잘한다고 볼 증거도 충분치 않다. 따라서, 수학을 잘한다고 꼭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학생들 혹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교육 시스템에 있다


노벨상이란 것도 결국 인간이 배운 지식을 사용하여 이전에 없던 큰 업적을 낸 사람에게 주어지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창의력이다.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교육은 한마디로 창의력이 없다. 창의력을 키우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주입식에다 암기식이다. 수학을 잘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공식을 외우도록 가르치며, 지금도 수학의 정석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을 가르치기에 바쁘다.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이 있지만, 모든 학생에게 한가지 방법만 가르치며 수학적 창의력을 죽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 유치원생들만 봐도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유치원생들부터 구구단을 외우는 것으로 결국 배움을 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는 교육이 아니라 생각을 죽이는 교육, 즉 암기식 교육부터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 우리 나라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무리 우리 나라 학생들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혹은 그들보다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창의력이 몸에 배지 않은 우리 나라 학생들에게 노벨상은 너무나 큰 사치인 것이다.


 

수학적 능력 + ? = 노벨상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노벨상이 인생의 최종적인 목적이 아닐 것이다. 노벨상은 오히려 그저 자신이 맡은 분야에 집중하다 보니 어떨결에 받게 된 보너스와도 같을 것이다. 실제로, 노벨상을 받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연구를 하진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그저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리고 더 많은 집중을 했던 것이 노벨상이라는 결과로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즐기기 위한 학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지식을 대하는 것 자체가 서양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 나라는 지식을 돈 벌이로만 이용하려고 하는데, 서양 혹은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는 공학 기피현상이 있고, 수능 시험을 잘 보면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려고 한다. 또는, 안정적인 직장이 좋아 공무원 혹은 고시 시험을 공부(암기)하기 위해 책을 본다. 유치원 때 구구단을 외우는 습관이 취직할 때에도 쓰이는 안타까운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식으로 지식을 큰 돈을 벌거나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습득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만큼 노벨상이 나올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고, 또 그만큼 노벨상을 탈 사람은 절대 나올 수 없다.

 

학문은 즐겨야 한다. 힘들지만 그래야 노벨상을 탈 수 있다. 단지 연구 실적을 올리기 위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혹은 뽐내기 위한 연구는 그럴 수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수학을 잘할지 모르지만, 노벨상은 즐기기 위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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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우리 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Posted at 2013.09.12 08:39 | Posted in 일상 생각 & 의견 & 아이디어/시각 & 의견 & 생각


우리 나라에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없다. 평화상 말고는 학계에 영향을 거의 미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한번쯤 고민해 봤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나라 대학 교육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노벨상,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성과에 수여

 

노벨상은 물리, 화학, 경제, 문학, 의학 등의 부문에서 이전에 알려져 있지 않거나 기존의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지식 및 기술에 주어진다. 기본적으로 창의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 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인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 혹은 창의성이 없다면 노벨상은 그림의 떡이다. 창의성이 없다면, 새로운 생각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창의력을 키우라고 말로만 외칠 뿐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한다. 우선, 1차적으로 입시 교육 위주이기 때문이며, 2차적으로는 대학이라는 최고 학문 기관에서도 역시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 초중고 12년 동안 외워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가서도 외우는 교육 위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 아래 절대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초중고 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왜?

 

초중고 교육은 우리나라의 치열한 교육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암기 위주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험 문제 역시 암기 위주다. 정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로 점수를 매겨 1등부터 꼴등까지 산정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술이나 주관식 답을 요구하는 문제만으로 대학 입시를 결정한다면, 채점에 주관성이 반영될 수 있고, 부모들은 그 주관성에 영향력을 미치려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촌지 (흔히 말하는 로비)가 대유행이 될 수 있다.

 

여하튼, 초중고 교육은 학생들을 순위를 매기기 위해 암기력을 이용한다. 누가 가장 암기를 잘 하느냐 그리고 기억을 오래 하느냐에 따라 순위를 매겨 대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암기력을 가지고 이제는 응용력을 보는데, 이 응용력의 정도에 따라 그 학생들을 일류대학과 중간급의 대학으로 나뉘게 된다. 암기력에 응용력까지 좋다면, 흔히 말하는 ‘서연고’ 대학은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일류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여전히 암기 위주며, ‘오래된’ 교육을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서연고’ 대학에서 노벨상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서연고’ 대학에서 노벨상을 받지 못하니, 그 외 대학에서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에서 문제를 찾았다. 

 

교수부터 생각이 굳어 있어

 

우리 나라 교수들의 고리타분하다. 물론, 일반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리 차지하기에 급급하며, 학계의 흐름을 잘 모른다. 수업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것처럼 여전히 칠판에 분필로 써가며 암기를 강요하기도 하고, 시대가 어느 때인데 케케묵은 옛날 자기가 썼던 논문의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은 초중고와는 달라져야 한다. 토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발휘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응용력에 더해 창의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교수들이 암기를 강요하니, 대학생들은 도서관에 앉아 홀로 책과 씨름하고 있다. 물론, 책 보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통한 것과 책만 보면서 외우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창의력이 아닌 그저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것을 외우는 것은 그저 자기 뇌용량을 스스로 과부하시키는 일일 뿐이다. 창의력이 들어갈 틈도 없이 말이다.

  

교수의 고정관념이 잘 드러난 일화

 

친한 후배가 있다. 자취를 하기 때문에 종종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간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어떤 교수가 슬리퍼를 신으면 자기 수업을 들여 보내지 않겠다고 선포한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 점점 더워지는 여름, 이 친구는 유독 그 교수 수업에 갈 때면 운동화를 신고 가야 한다.

 

과연 슬리퍼를 신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혹시, 우리 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한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질문해보자. 교수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교수가 과민반응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은 이렇다. 슬리퍼를 신고 강의실에 오는 학생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교수들은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도 그랬으니 요즘 학생들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오랜 습관 또는 관습에 파묻혀 있으니, 요즘 학생들도 으레 그렇게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것과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유학했던 영국 런던의 대학들은 물론 옥스포드, 캠브리지에서도 종종 학생들은 슬리퍼를 신고 수업을 듣는다. 미국은 영국보다 더 자유로워서 그런 학생들의 숫자가 보다 많다. 특히, 학교 기숙사가 대학 안에 위치한 대학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 나라 교수들은 왜 학생들에게 슬리퍼를 신고 오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공부 잘 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슬리퍼를 신든 자연주의에 빠져 맨발로 학교에 오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대학은 겉치레에 빠졌다. 그리고, 모두다 똑같은 모습을 강요한다. 모두가 운동화나 구두를 신어 자신의 발가락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을 타는데 겉치레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로지 연구 실적 혹은 아이디어다. 연구실적을 내는데, 슬리퍼를 신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든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나라 교수들은 슬리퍼를 신지 않는 것이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수업 자체에 들어와 준 것만 해도 학생들에 고마워해야 한다. 교수들도 경쟁시대라는 것을 모르고 여전히 고정관념에 빠져버린 것이다그리고, 옛날 스타일과 생각 그리고 그 보수적 태도의 교수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당연히 교수들은 노벨상을 타지 못하고, 그 아래에서 배우는 학생들도 역시 노벨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나라 대학 교수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보고 배우는 학생들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으며, 이럴 경우 평생 우리 나라에 노벨상은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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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가 아직도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우리 나라가 아직도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Posted at 2011.08.19 07:07 | Posted in 일상 생각 & 의견 & 아이디어/시각 & 의견 & 생각
아직 우리 나라는 노벨 평화상 말고는 수상자가 없다. 과연 우리 나라가 여타 다른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 뒤쳐졌는가를 따져보면 또 그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물리, 화학, 경제, 문학, 의학 등의 수상자는 전무하다. 옆의 나라 일본과 비교해서 좀 그렇지만, 일본은 벌써 18개의 노벨상(1개의 노벨 평화상 포함)을 받았다. 일본을 그렇게 따라잡으려고 하는 우리 나라지만, 노벨상 숫자만 보면 아직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것이다.

 

물론, 조만간 우리 나라도 받을 것이라고 예측을 많이 한다. 노벨상을 발표하는 시기 때마다 우리 나라 수상자도 나올 수 있다고 언론들의 설레발이 요란스럽기도 하다. 괜히 내가 민망한 적도 있다. 당사자들은 차라리 기자들이 가만히나 있어줬으면 좋다는 눈치지만, 요란스럽게 떠들기만 하고 정작 발표가 나면 조용하다. 차라리 발표 전에 조용히 하고 있다가 노벨상 발표 후 기자들이 요란스럽게 축하해주는 기사를 내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왜 우리 나라는 노벨상을 못 탈까

 

먼저, 교육을 빼놓을 수 없다. 노벨상이란 것도 결국 인간이 배운 지식을 사용하여 이전에 없던 큰 업적을 낸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교육은 한마디로 창의력이 없다. 창의력을 키우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주입식에다 암기식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구구단을 외우는 것으로 결국 배움을 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생각을 하는 교육이 아니라 생각을 죽이는 교육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 당연히 노벨상은 나올 수 없다. 노벨상은 예전에 알려지거나 이미 사용된 지식을 습득한 자에게 주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 내야 주어지는 상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교육은 창의력보다는 암기력을 요구한다. 우리 나라 교육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우리 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도 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간다. , 미국이나 영국 등으로 유학을 가서 그 나라에서 가르치는 교육을 받는데도 아직 노벨상은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 나라 교육에서 벗어났는데도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것은 비단 우리 나라 교육의 문제만은 아닌 보다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우리 나라 사람이라도 그 나라 안에서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 우리 나라의 수능시험이라는 미국의 SAT, 영국의 IELTS 등이 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SAT 성적 상위자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계 이민자 혹은 유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영국도 미국과 그 상황이 비슷하다.

 

따라서, 이것은 서양과 교육의 차이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고유의 문화, 생활 방식 등이 노벨상 수상을 막고 있다고 봐도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지식을 대하는 것 자체가 서양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즉, 우리 나라는 지식을 돈 벌이로만 이용하려고 한다. 대학에는 공학 기피현상이 있고,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려고 하며, 공무원 혹은 고시 시험을 공부(암기)하기 위해 책을 본다. 지식을 큰 돈을 벌거나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습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 혹은 가까운 일본만 해도 지식을 지식 그 자체로 즐기고 있다. 즐기는 자는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즐기는 이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그들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연구하고, 그런 연구 속에 창의력이 자연히 발휘된다. 억지로 창의력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창의력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벨상을 타기 위해 연구를 한다고?

 

요즘은 G20회의도 열었겠다 올림픽, 월드컵, 곧 있을 육상대회 그리고 동계올림픽까지 치르니 지금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지식을 돈을 벌겠다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진국이 아니라 영원한 개발도상국일 뿐이다.

 

지금에 와서야 왜 애플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우리 나라에 없다고 소리쳐도 소용이 없다. 남의 지식을 맹목적으로 쫓고, 창의력,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을 턱이 없기 때문에 소리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게다가, 창의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도 자신이 나서서 새로운 비즈니스나 창업을 하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도 대기업 혹은 공기업에 들어가려고 스펙 쌓으면서 뭔가 외우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더 문제인 것은 사회도 이것을 우리 나라 청년들에게 은연중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회 편견을 바꾸지 않은 채, 우리 나라 학계는 바로 노벨상을 타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 생각에 노벨상 없이는 우리 나라 수준이 너무 낮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누누이 강조했듯이, 노벨상 타기 위한 연구라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짓이다. 연구는 즐겨야 하는 것인데, 노벨상 그 자체로의 목표만 가지고는 실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창의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 나는 책 장사가 아니니 어디에서 베껴 온 것이 아닌 그냥 내 생각을 말하겠다.

 

창의력이란 것이 다른 데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능력이지만, 기존에 나와 있는 것들을 새롭게 혹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합하여 한단계 새로운 형식의 지식을 창조하면 그것도 창의력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창의력을 기르려면 우선 일상생활 속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것들을 한데 묶는 생각이 필요하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연필과 지우개를 보면 된다. 원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연필 끝에다 지우개를 붙이는 생각을 했다. 일상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이런 발명은 어떻게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다 창의력으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의력은 그들의 생각을 존중할 때 더욱 커진다. 특히, 어린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일 경우는 어리다고 그들의 생각이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창의력의 새싹을 미리 밟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영어단어, 알파벳 혹은 구구단을 빨리 외우게 하는 것은 다 소용없다. 외국은 구구단을 외우지 않고, 시험 때도 계산기 쓴다. 그리고, 영어 단어도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을 가지고 외우게 하면 좋고, 알파벳도 각각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외우면서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간혹 이런 방식이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뒤쳐진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다른 아이들은 주입식으로 금방, , 우리 나라 식으로 빨리빨리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느려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런 방식은 창의력을 죽이는 방식이다. 어린 아이들은 뇌용량과 그 활동량이 현저히 적다. 이런 아이들의 두뇌를 구구단이나 알파벳 등으로 채우지 말고 차라리 거기에다 창의력의 기초를 쌓는 노력을 하면 좋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무서운 적은 어릴 때부터 외우는 습관을 들이면, 커서도 모든지 외우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아이슈타인이나 에디슨 같은 사람을 보면 어렸을 때 얼마나 엉뚱했는지 다 알려져 있다. 어릴 때는 어느 정도 뒤쳐지고 엉뚱해져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책과 친해지거나 새로운 현상과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지식 습득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즐길 수 있어야 지식 그 자체를 좋아하게 되고, 결국 창의력이 생긴다. 창의력은 어느 주입식 교육보다 우월하며, 이런 창의적 사고를 고조시키는 보편화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비로서 우리 나라도 노벨상을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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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학교의 수업 방식, 노벨상이 나올 만 하다.영국 대학교의 수업 방식, 노벨상이 나올 만 하다.

Posted at 2009.03.17 08:07 | Posted in 영국★대학교

우리 나라의 초,, 고등학교의 교육은 주입식 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칠판에 적거나 선생님이 자습서를 읽어주고, 학생들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적고고 하는 방식이죠. 이런 주입식 교육의 습관은 대학교에 그대로 이어집니다. 학창시절, 칠판 필기 한번 놓치기가 무섭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외치는 광경을 한두번쯤 보셨을 겁니다.

며칠 전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배우겠다는 발언을 했더군요
. 잘못 받아들이면 안되는 것이, 미국은 대학교를 가고자 하는 사람만 갑니다. 우리 나라처럼 누구나 대학교를 가려고 하지 않죠. 따라서, 오바마의 발언은 한국의 주입식 교육 방식을 배우겠다는 것이 아닌 교육열을 배우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대학교 입학률도 한국과 비교해서 아주 낮습니다
.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한국이 더 높죠. 최근 영국에서 그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보다는 낮은 수준입니다.

이것은 다르게 해석하면
, 한국과 영국의 대학 교육 집중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정부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 경우, 많은 수의 대학교보다 소수의 대학교에 집중하는 것이 교육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은 당연하죠. , 이것은 박사 정도의 레벨로 가면, 연구 투자 금액 차이로 고스란이 이어집니다.

제가 처음 영국 대학교
1학년에 들어 갔을 때, 색다른 수업 방식으로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교수가 한 토론 주제와 백지를 주고, 그 주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적어보라고 하더군요. 저는 교수가 칠판에 적거나 수업을 하면, 받아 적을 태세였지만, 교수는 멀뚱멀뚱 우리들을 쳐다보기만 할 뿐 우리들 스스로 머리를 굴리며, 그 주제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적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브레인스토밍 (Brainstorming)이라고 하는데, 영국 대학교 수업 방식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이용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우리 나라
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잘 설명할 것인가가 주요 관심사처럼 보이지만, 영국 선생님들은 어떻게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가가 주요 관심사처럼 보일 정도죠.

영국 대학교의 또 다른 주요 방식은 바로 토론입니다
. 영국 선생님들의 그 학생들을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토론이죠. 영국은 토론 문화가 일찍이 발달해서, , 중학교 때부터 토론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초,중학교의 인원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영국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많은 수준이고, 사람이 많을수록 토론 보다는 강의가 더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또,
영국 대학교에 들어가면, 보통 네, 다섯 명의 학생들이 Project 혹은 Coursework이라는 이름아래 한 한기, 길면 1년 간 그룹으로 같이 다니며, 한가지 커다란 숙제를 같이 하게 됩니다. 중간 중간에 교수의 첨삭과 가이드라인을 받고, 팀원끼리 토론하며, 그들의 지식을 공유하며 그들의 지식을 한층 더 발전시키죠. 우리 나라 대학생들처럼 천성 수업 끝나고, 도서관에 앉아 책과 씨름하는 것에 자기 만족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브레인스토밍과 토론 방식 수업의 장점은 창의력 향상을 들 수 있습니다
. 이 창의력은 기초과학에 가장 중요한 요소며, 노벨상을 받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기도 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수업 방식에서 학생들은 남다른 호기심과 참여 욕구가 생기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창의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노벨상을 타려고 연구하거나 개발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형성된 호기심과 참여,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창의력을 십분 이용한 것뿐이죠. 말은 이렇게 쉽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결코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로 한국 교육의 문제를 꼽고 있습니다. 저도 이 교육의 차이가 영국은 노벨상을 지금껏 114명 수상한 사이, 아직 한국에서는 한명도 받지 못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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