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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교육 발전을 위해 교수들의 인식을 바꿔야 2014.03.12
  2. 우리 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1) 2013.09.12

대학교육 발전을 위해 교수들의 인식을 바꿔야대학교육 발전을 위해 교수들의 인식을 바꿔야

Posted at 2014.03.12 07:00 | Posted in 일상 생각 & 의견 & 아이디어/교육

우리 나라 미래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 - 교수의 인식을 바꾸자!


대학 교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미 제 3장과 4장에 걸쳐 말했다. 이미 말한 만큼 여기서는 영국 대학교 수업, 교수의 수업 방식, 시스템 등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영국 교수들은 대체적으로 대화가 오가는 수업을 하고 있다. 렉쳐(Lecture)라고 해서 강의 위주의 수업이 있지만, 강의가 끝나고 바로 세미나 형식으로 학생들을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 토론도 하고 수업에 대한 깊은 공부가 이어진다. 일반적인 영국 대학교들이 강의와 세미나를 동일한 비중으로 중요시 하지만, 영국의 최고 명문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대학 등은 강의 보다는 세미나에 더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의에 소홀히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강의에서는 일반적인 것을 다루는 반면 세미나를 통해 보다 깊은 지식을 쌓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게다가, 옥스포드나 캠브리지는 우리 나라의 과외처럼 교수와 독대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교수의 강의 방식도 우리 나라 대학 강의와는 사뭇 다르다. 교수는 종종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말한다. 서로 질문과 대답의 꼬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종종 이렇게 질문을 하다가 수업이 끝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다른 수업이 해당 강의실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강의 시간을 더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무언가 바쁜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 강의실을 나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세미나는 여러 소규모 그룹이 나누어지기 때문에 해당 교수의 제자가 맡기도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교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조교로만 부족하기 때문에 세미나만 따로 수업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은 학교마다 제각각이지만 일반적으로 튜터(Tutor)라고 부른다. 만약 튜터 선에서 궁금한 점이 풀리지 않거나 더 깊게 공부하고 싶다면 교수를 찾아가면 된다. 


또한, 내가 보기에 영국 교수들은 쉽게 바뀌고 학교를 이동한다. 내가 입학하기 전에 내 전공에 한국인 교수가 한명 있었는데, 내가 입학하고 나서 미국으로 학교를 옮긴 것을 봤다. 또한, 한 학기가 끝나고 새로운 교수가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 나라처럼 교수가 한 대학교에 오래 머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한번은 금융공학 교수로 온 젊은 교수가 있었는데, 나는 이 교수가 가르치는 재무 리스크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온지 1년이 지나 교수직을 그만두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미국 투자은행에 스카우트 되어 금융인이 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일이 우리 나라에서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분명 대학 교수라는 직업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분명하다. 영국에서 대학 교수로 남는다는 것은 평생 특정 분야에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인드가 역시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노벨상을 받는 교수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꾸준히 새로운 이론과 방법을 연구하고 한단계 더 발전된 학문을 추구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영국 교수들은 평가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 자신의 학문 분야에 논문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지금 조금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대학 교수들의 논문이나 학업적인 발전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나는 최소한 표절이나 학생들의 성과를 앗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여하튼, 대학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 금융인이 되었던 그 젊은 교수는 어쩌면 평생 학문과 외로운 싸움에서 벗어나 런던 금융 시장의 치열한 싸움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치열한 만큼 돈도 많이 주니 어쩌면 외로운 싸움으로 얻는 명성보다 치열한 싸움 결과 얻는 그 전리품을 더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본다면 도전 정신이 그만큼 투철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단언컨데, 이 도전정신은 우리 나라 교수들에게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eBook [런던 유학생의 까칠한 시선 - 절대 대학가지 마라] 중 일부분...


*이 블로그에서 eBook으로 발행된 '런던유학생의 까칠한 시선 - 절대 대학가지 마라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목차>

1. 시작하는 글.

2. 교육의 의의

진정한 교육이란?

영국 교육의 자발성

 

3. 안타까운 우리나라 교육 현황

주입식 교육 문화

사교육의 유행

- 12년 동안 공부하고 수능에 목숨 거는 학생들

어렵게 들어간 대학교수와 학생의 잘못된 만남 

안타까운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 - 정리

 

4. 누구나 대학가는 우리 나라의 문제점

쓸데없이 눈만 높아져 3D업종 기피

쓸데없는 스펙 시장만 커져

스펙 인플레이션의 폐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대학생

 

5. 우리 나라 대학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대기업에 대한 대학생의 인식을 바꾸자!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6. 우리 나라 미래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대학 진학과 비진학의 자발성 부여

중고등학교 때 자신이 소질을 보이는 재능 찾기

재능이 아니라면 3가지 특성화 능력 키우기

국어와 역사 교육은 필수

 

7. 우리 나라 미래의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

대학생들이여대학을 적극 활용하라!

교수들이여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 <-- 블로그 내용

대학교들이여대학 시스템을 바꾸자

 

8. 맺음말.


'런던유학생의 까칠한 시선- 절대 대학가지 마라' 지난 2014년 2월 발행된 eBook(전자책)으로 현재 25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저작권은 '서울런던' 에 있습니다. 런던포인터닷컴은 제휴를 통해 단순 배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부 내용만 공개될 예정입니다. 전체 글은 교보문고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 바로가기 



우리 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우리 나라 교수들이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Posted at 2013.09.12 08:39 | Posted in 일상 생각 & 의견 & 아이디어/시각 & 의견 & 생각


우리 나라에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없다. 평화상 말고는 학계에 영향을 거의 미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한번쯤 고민해 봤을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나라 대학 교육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노벨상,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성과에 수여

 

노벨상은 물리, 화학, 경제, 문학, 의학 등의 부문에서 이전에 알려져 있지 않거나 기존의 것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지식 및 기술에 주어진다. 기본적으로 창의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 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인 것이다. 따라서, 창의력 혹은 창의성이 없다면 노벨상은 그림의 떡이다. 창의성이 없다면, 새로운 생각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창의력을 키우라고 말로만 외칠 뿐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한다. 우선, 1차적으로 입시 교육 위주이기 때문이며, 2차적으로는 대학이라는 최고 학문 기관에서도 역시 창의력을 죽이는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 초중고 12년 동안 외워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에 가서도 외우는 교육 위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육 아래 절대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초중고 교육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왜?

 

초중고 교육은 우리나라의 치열한 교육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암기 위주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험 문제 역시 암기 위주다. 정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로 점수를 매겨 1등부터 꼴등까지 산정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술이나 주관식 답을 요구하는 문제만으로 대학 입시를 결정한다면, 채점에 주관성이 반영될 수 있고, 부모들은 그 주관성에 영향력을 미치려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촌지 (흔히 말하는 로비)가 대유행이 될 수 있다.

 

여하튼, 초중고 교육은 학생들을 순위를 매기기 위해 암기력을 이용한다. 누가 가장 암기를 잘 하느냐 그리고 기억을 오래 하느냐에 따라 순위를 매겨 대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암기력을 가지고 이제는 응용력을 보는데, 이 응용력의 정도에 따라 그 학생들을 일류대학과 중간급의 대학으로 나뉘게 된다. 암기력에 응용력까지 좋다면, 흔히 말하는 ‘서연고’ 대학은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일류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여전히 암기 위주며, ‘오래된’ 교육을 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서연고’ 대학에서 노벨상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서연고’ 대학에서 노벨상을 받지 못하니, 그 외 대학에서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에서 문제를 찾았다. 

 

교수부터 생각이 굳어 있어

 

우리 나라 교수들의 고리타분하다. 물론, 일반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리 차지하기에 급급하며, 학계의 흐름을 잘 모른다. 수업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초중고 학생들이 배우는 것처럼 여전히 칠판에 분필로 써가며 암기를 강요하기도 하고, 시대가 어느 때인데 케케묵은 옛날 자기가 썼던 논문의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은 초중고와는 달라져야 한다. 토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발휘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응용력에 더해 창의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교수들이 암기를 강요하니, 대학생들은 도서관에 앉아 홀로 책과 씨름하고 있다. 물론, 책 보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 토론을 통한 것과 책만 보면서 외우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창의력이 아닌 그저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것을 외우는 것은 그저 자기 뇌용량을 스스로 과부하시키는 일일 뿐이다. 창의력이 들어갈 틈도 없이 말이다.

  

교수의 고정관념이 잘 드러난 일화

 

친한 후배가 있다. 자취를 하기 때문에 종종 슬리퍼를 신고 학교에 간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어떤 교수가 슬리퍼를 신으면 자기 수업을 들여 보내지 않겠다고 선포한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 점점 더워지는 여름, 이 친구는 유독 그 교수 수업에 갈 때면 운동화를 신고 가야 한다.

 

과연 슬리퍼를 신고 강의실에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혹시, 우리 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한번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질문해보자. 교수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교수가 과민반응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내 생각은 이렇다. 슬리퍼를 신고 강의실에 오는 학생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교수들은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도 그랬으니 요즘 학생들도 그렇게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오랜 습관 또는 관습에 파묻혀 있으니, 요즘 학생들도 으레 그렇게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것과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유학했던 영국 런던의 대학들은 물론 옥스포드, 캠브리지에서도 종종 학생들은 슬리퍼를 신고 수업을 듣는다. 미국은 영국보다 더 자유로워서 그런 학생들의 숫자가 보다 많다. 특히, 학교 기숙사가 대학 안에 위치한 대학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 나라 교수들은 왜 학생들에게 슬리퍼를 신고 오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일까. 위에서 말했듯이, 공부 잘 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슬리퍼를 신든 자연주의에 빠져 맨발로 학교에 오던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도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대학은 겉치레에 빠졌다. 그리고, 모두다 똑같은 모습을 강요한다. 모두가 운동화나 구두를 신어 자신의 발가락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을 타는데 겉치레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로지 연구 실적 혹은 아이디어다. 연구실적을 내는데, 슬리퍼를 신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든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나라 교수들은 슬리퍼를 신지 않는 것이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수업 자체에 들어와 준 것만 해도 학생들에 고마워해야 한다. 교수들도 경쟁시대라는 것을 모르고 여전히 고정관념에 빠져버린 것이다그리고, 옛날 스타일과 생각 그리고 그 보수적 태도의 교수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 당연히 교수들은 노벨상을 타지 못하고, 그 아래에서 배우는 학생들도 역시 노벨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나라 대학 교수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보고 배우는 학생들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으며, 이럴 경우 평생 우리 나라에 노벨상은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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