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으로 과시하지 않는 영국인들, 그 이유는?명품으로 과시하지 않는 영국인들, 그 이유는?

Posted at 2010.12.30 18:39 | Posted in 영국★한국 사회

런던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 런던 사람들의 옷차림을 유난히 살펴보곤 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런던 패션이란 명성과는 다르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물론, 숨겨진 명품도 있다. 브랜드 로고가 크지 않고 옷 속에 그 상표가 숨겨진 경우, 아니면 테일러 메이드(Taylor made) 된 옷으로 명품보다 고가의 비용으로 자신의 신체에 꼭 맞는 옷일 수도 있다.

하지만
, 서울 길거리에서 보이는 명품 옷, 가방, 신발 등이 런던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많다. 버버리, 폴 스미스 등 명품의 고장인 영국 런던보다 서울에서 더 많은 명품을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왜 영국에서 명품은 그렇게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2만명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이 블로그 내의 다른  포스팅<영국과 한국, 명품에 대한 인식 차이>에 디테일하게 명시되어 있으니, 이번 포스팅은 두번째 질문에 대한 견해를 밝히려고 한다.


명품임을 숨기려는 영국인
?

예부터 영국에서는 명품은 왕족을 포함한 귀족 계층 이상만 입을 수 있었다. 가격적인 문제가 가장 컸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귀족계층이란 것과 명품의 동일시는 귀족들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귀족들이 명품을 선호한 이유는 그 당시 명품은 일반 옷보다 실용성도 뛰어났고 내구성도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디자인만을 추구해 생활하기 불편한 일부 명품 옷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용성과 내구성을 원하는 그들이 입는 명품에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옷은 필요 없었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면 좋았고, 그렇게 입을 수 있는 것은 싸구려 중국제가 아닌 영국 명품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다 헤진 옷과 신발 등 옛 것을 좋아하는 영국신사의 모습은 이런 전통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 들면서 귀족 계층의 이런 선호가 일부 영국 상류층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명품 로고가 크고 화려한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다위에서 잠시 언급한 테일러 메이드 옷을 좋아하고, 명품이지만 일반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 잘 모르는 그런 옷을 입고 다닌다. 이유는 그렇게 명품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에 대한 반감이고, 이 반감의 이유는 바로 추함이다.

 

명품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심리는 명품을 걸침으로써 자신이 상류층이 될 것이라는 과시욕과 그 환상이 바탕이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반어적 행동으로, 그런 과시욕을 한다는 자체가 현재 자신이 상류층이 아니라는 증거가 됨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은 단순히 돈이 많음을 드러내는 하찮은 허세에 불과하고 또 추하다는 것이 상류층의 생각인 것이다.


이제는 명품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대세?

명품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일본에 200개가 넘는 매장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국의 폴 스미스가 중국 시장에서 매장 오픈 1년여 만에 철수한 이유도 명품 로고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가격만 비쌌지 겉으로만 봐서 명품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폴 스미스가 구미에 당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명품만 쫓는 사람들에게 명품 로고가 그만큼 중요하다. 안타깝지만, 아직 우리 나라도 중국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영국에서도 상류층이 아닌 영국 일반 소비자들은 명품 로고가 드러난 명품을 좋아한다. 평균 소득 수준이 커지고 따라서 가처분소득이 높아지면서 명품 구입이 상대적으로 쉬어졌고, 그래서 명품을 과시용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약간씩 달라지고 있다.

 

사건의 시발점은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였다. 애플이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점령했을 때, 아이팟을 훔치기 위해 런던 밤거리에서의 강도사건이 많아졌고, 심지어는 그깟 40만원 때문에 살인까지 종종 발생했다. BBC뉴스는 그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CCTV를 여과없이 방영했고, 런던은 급기야 아이팟을 소지하고 다니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이 때 런던의 밤거리는 마치 작지만 비싼 물건을 훔치기 위한 하이에나들로 득실거리는 야생과도 같았다.

 

이후 소비자들의 주의와 경계로 아이팟을 훔치기 힘들어진 런던의 하이에나들은 들고 다니기 쉬운 명품 가방을 노렸다. 이들 입장에선 들고 다니기 쉬우니 훔치기도 쉬었고, 이런 훔친 제품들은 이베이나 직거래 등 주로 인터넷을 통해 아이팟 못지 않게 비싸게 되팔렸다. 몰래 훔치면 말을 안 하겠지만, 이들은 흉기로 위협하고 심지어는 반항할 경우 해하기도 했기에 런던은 그야말로 거지처럼 보이는 것이 밤에 가장 안전해 보일 정도였다.

 

이런 사건이 자주 터지자 영국 사람들은 예전 영국 귀족들처럼 명품임을 드러내지 않는, 아무리 봐도 이것이 명품인지 전혀 모르는 제품으로 자연스레 손이 갔다. 이것은 영국 경찰에 의한 안전이 아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경험적이자 소극적 조치였다. 아무튼, 유행은 다시 돌고 돈다고 했던가. 이유는 다르지만예전 영국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명품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게 되었고, 이런 현실 속에 명품으로 과시하지 않는 영국인이 많아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eppinggreen@londonpointer.com